2009년 7월 5일 일요일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법 <후불제 민주주의>

 

 

 

 

 

 

 

생명의 처음과 마지막이 오가는 곳에선 언제나 진실한 감정만이 교류하는 듯 보인다. 사실상 이 때만큼 많은 사람들이 가식의 탈을 뒤집어 쓰기 쉬울 때도 없는데도 말이다. 특히 말이 없는 죽은자를 이용하길 좋아하는 사람들, 처세술에 능한 사람들, "정치인의 말은 거짓말을 진실처럼 만드는 것"이라는 조지 오웰의 명언처럼 거짓말로 매일을 전쟁하는 정치판의 사람들이라면 더욱이 그러하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생전 그 분을 벼랑으로 몰기 바빴던 언론과 한나라당은 아전인수식 해석을 통해 '죽음'까지 권력의 잣대에 이리 재고 저리 재며 나를 역겹게했다.

 

그런데 이 악어들의 눈물바다 사이로 유독 비통한 눈물을 흘리던 한 정치인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의리의 대구 사나이, 유시민 前 보건복지부 장관의 뜨거운 눈물이었다. 손끝에 국화꽃 향기가 채 가시기도 전 추모분향소에서 슬픔으로 맞잡은 그 정치인과의 낯선 악수 이 후 나는 곧장 그의 저서 <후불제 민주주의>를 손에 잡아 단숨에 읽어 나갔다.

 

<후불제 민주주의>는 헌법에세이라는 말에 딱 맞는 수필모음집이다. 응당한 댓가를 지불해야 얻을 수 있는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가 너무 쉽게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저자의 진단에서 나온 제목 <후불제 민주주의>, 그 속에서 저자는 그 민주주의의 뿌리라고 볼수 있는 헌법의 가치와 개념을 통찰하고 나아가 국회와 정치에 대한 소신을 피력한다. 책이 담고 있는 주제인 법이라는 것이 사실 대중과는 다소 어색할 수 있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것이 어렵지 않다. 글을 잘 쓰기로 소문난 유시민답다. 현란한 기교나 겉멋을 부리는 법도 없다. 자기성찰의 문장 하나하나에서 그만의 반듯함이 느껴진다. 역시 '고수는 다르다'.

 

솔직히 나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전 '유시민 前 보건복지부 장관' 하면 떠올랐던 세가지를 꼽아보자면 100분 토론에서 말 한번 참 잘하던 정치가의 이미지나 그의 저서 <거꾸로보는 세계사>, 오바마 정도에 불과했다. 굳이 한가지 더 떠올려본다면 '탐폰' 정도. (아, 진교수님 이시어...) 그래서인지 '진정한 신자유주의자'나 '제 2의 장세동'이라는 별명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도 했고 스스로 조금 곡해된 마음으로 그를 본 탓에 책을 읽기 전 이러저러 걱정 했던 것을 시인한다.

 

그런데 읽는 동안 처음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사실이라기엔 좀 싱겁지만 변명이라기엔 좀 정직한 문장들로 참여정부를 변호하는 부분들마저 끝부분의 장하준 교수에 대한 내용 외에는 딱히 큰불편한 점은 없었다. 오히려 장관 재직 시절 업무 수행 과정이나 위계질서를 수평적으로 바로잡고자 했던 부분에선 존경심 내지는 저런 상사와 일해으면 하는 바람까지 든다.

 

책 안에서 자신을 정치유배자이자 지식소매상으로 정의했던 유전장관은 故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이제 사실상의 정치적 사상적 후계자로 많은이들 지지를 받고 있다. 앞으로 그가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많은 귀추가 주목되어있지만 지극히 지협적인 시각의 나로써는 사실 이같이 훌륭한 사람이 나라를 다시 이끌어 주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그저 그가 지식소매상을 하며 훌륭한 글쟁이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다. 책을 읽는 내내 정의와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면 '바보'가 되는 사회의 병폐적 풍토 위에 정직한 사나이로 살아가는 그의 고달픔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끝으로 유시민의 유명한 항소이유소를 첨부하며 글을 마친다. 볼때마다 다시한번 감탄하게 만드는 스물다섯살의 그를 만나고 나면 '타고난 위정자'같은 뜬구름잡는 봉건시대적 발상을 한번쯤은 재고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그는 참 흥미로운 정치가이다.

 

 

 

 

항소이유서.


 

16 개의 댓글:

  1. 아악, 앞의 1/3은 진지하게 읽다가 스크롤바가 너무 길어서 스킵orz



    유시민씨 글빨이 장난이 아니군...정도를 느끼고 일단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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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양심...이라는 낱말 하나가 참 많은 것을 담고 있네요. 역시 유시민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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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말이 '통'하는 몇 안되는 정치인이죠...



    좋은 글 고맙게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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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저도 지금의 유시민 前 장관을 바라보면, 두가지 생각이 듭니다. 하나는 그나마 지금 정치인들 중에서는 생각이 통하는 사람이니 정치 일선으로 나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보다는 저술 활동이나 후학 양성에 힘써 주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상이한 두 생각이 한 사람을 바라보며 나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을 아끼기(?)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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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제가 읽고 싶어 하는 책중에 한 권인데 도서관에서 빌려보렸더니 대출중 ^^ 들어오면 냉콤 빌려다 보려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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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trackback from: Lomely Planet 독서토론
    책선택의 이유는? 남들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주제. 결론은 세계관 1. 당신에게 여행이란.. What does “Travel” mean to you? 이준헌 : 휴식 김성우 : 재충전 일반적으로 휴식이나 재충전의 의미가 강하나, 뒤에도 얘기하겠지만 다양한 목적과 의미가 있다. Where do you want to travel? Find your destination!! 정민곤 => 뉴욕 와이? 그 거리를 걷고 싶어서.. 강묘정 => 스위스 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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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그 뜨거웠던 눈물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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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mahabanya - 2009/07/05 21:40
    이렇게 긴글을 아무런 참고자료없이 썼다하니...유시민씨가 참 인물은 인물인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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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성현도사 - 2009/07/06 00:49
    양심. 쓰기도 쉽고 쓰는 사람도 많은데 정작 지키는 사람은 적은 요상한 낱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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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옹리혜계 - 2009/07/06 07:15
    네.. 제발 한나라당이든 뭐든 말이 통하는 사람으로 국회를 채워주시면 잘해보겠다던 유시민씨의 말이 생각납니다.



    답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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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mooo - 2009/07/06 14:43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서거이후에는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듭니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써야 그런분이 정치를 하면 좋겠지만 또 참여정부 시절에 조그만 잘못에도 언론의 호도에 힘입어 우리가 호되게 질책했던 것을 돌이켜보면서 걱정이 앞섭니다.



    정말 '지켜주고 싶은' 몇 안남은 정치인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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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Briller_Kate - 2009/07/07 15:28
    편견없이 읽으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보는내내 유 전장관의 필력에 감탄 또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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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백조트래핑 - 2009/07/10 11:07
    네... 아직도 가슴이 아프고 믿겨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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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별삼 - 2009/07/10 21:33
    이런 사람이 가장 똑똑하다고 인정한 사람이 노무현씨라니 이것도 ㅎㄷㄷ



    49재...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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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상식이 통하는 세상2009년 7월 23일 오전 5:47

    지금 108쪽 까지 읽었는데,



    '애국자' 편에서 나오는

    그 서울대 학생분이 (지금은 변호사를 하시고)

    누구신가 해서 검색하다가

    여기 오게됐네요. 혹시 아시나요? ^^;



    책 참 재밌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웠어야 할 내용을

    이렇게 쉽게 풀이해주니,



    유시민님에게 참 감사하기도 하고,

    이런 재능을 놔두고

    정치판에 뛰어들어야만 하는

    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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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상식이 통하는 세상 - 2009/07/23 05:47
    글쎄요... 저도 그 서울대 학생분이 누구인지는 알길이 없네요 T T 도움이 못되어 드려서 죄송해요



    그나저나 책은 뭐 유시민이라는 저자 이름답게 정말 재미나지요. 이런게 타고난다는 것인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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