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30일 화요일

가난한 잡담 3

 

 

 

 

 

*

 

 

사랑니 뺀곳이 몹시 아프다. 턱 주변엔 노랗게 멍이 맺혀있다.

병원에서 준 항생제와 진통제를 먹어야 하는데 '약'이라면 나는 일단 거부감이 든다.

 

'아직 애다. 애야.'하는 타박소리가 듣기 싫어 '병원균에 대한 자체적 내성능력의 증진격려'라며 그러므로 약은 못먹는게 아니라 안먹는거다라고 나를 합리화하다가 언제부터인가는 이것이 그저 고통과 나와의 한심한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이런걸 보고 흔히 '무식하다'고 하나?

 

 

*

 

 

요즘따라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자더라도 꿈을 자주 꾼다.

 

커피도 끊었는데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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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까칠 까칠. 커피 금단 증상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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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도 아닌데 진로타령한다는 놈은 등짝을 찰싹 때려주고 싶다.

 

너, 얄미워.

20대에게도 꿈 꿀 권리는 있단다.

 

 

*

 

 

실패를 하는 것보다

'실패했대~'하는 남들의 수근거림이 더 무서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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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들. 오지랖들. 흥.

 

 

 

*

 

 

 

'트위터'에 뛰어들었는데 짧은 글 끄적거리기 좋아하는 딱 내 취향이다.

블로그랑 연동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른다.

 

쯧쯧. 딱하기도 한 촌스런 여대생.

 

 

twitter.com/BYEOL3

 

 

 

*

 

 

 

역시 새벽엔 좀 더 감성적이다.

그래서 밤에 쓰고 낮에 지운다.

 

 

다시보면 오글오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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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쿵쿵 뛰나싶더니 쾅쾅 뛴다.

머리가 띵하고 눈이 침침하다.

 

이러다 갑자기 골로 가는거 아닐까...

 

 

*

 

 

 

커, 커피를 주...주십시오...!

 

 

 

*

 

 

 

 

 

HOLY FREAKIN SH*T !

 

 

 

*

 

 

젊음이 닳아없어지는 기분.

 

무지 초조하다.

뭐라도 해야 될것 같아.

뭐하지? 뭐하지?

 

 

*

 

 

...라고 외친 한 히키코모리 오타쿠는 무한도전 재방을 시청합니다.

 

작년과 달라진것없는 병맛라잎.

 

*

 

 

 

막장 별삼 선생의 '나의 소원'

 

나의 소원은 첫째도 술 좀 잘 마시게 해주세요

둘째도 술 좀 잘 마시게 해주세요.

셋째도 술 좀 잘 마시게 해주세요이다.

 

 

 

*

 

 

내 주량은 소주 두잔.

다음날 무사하려면 스포이드로 마셔야 된다.

 

우왕ㅋ굳ㅋ

 

 

*

 

 

 

ㄴㅏ는 ㄱㅏ끔 눈물을 흘린ㄷㅏ

 

 

*

 

NZ에 있을땐 그렇게도 한국에 오고 싶어했는데

서울 쪽방에 쳐박혀 앉아 있어보니 다시 비행기타고 싶다.

 

변덕도 심하면 병이다.

 

 

 

*

 

 

 

예술하자.

 

 

 

*

 

 

 

꺼져.

 

 

 

*

 

 

 

나의 대뇌 속 야당과 여당의 짧은 대화.

 

 

*

 

 

KBS에 전파를 탔던 "이명박 이 개새끼야 복수할거야 개새끼".

"이명박 이 개새끼야 복수할거야 개새끼"가 공중파를 타게 되어

"이명박 이 개새끼야 복수할거야 개새끼"라는 이 말로 벨소리가 만들어지고

"이명박 이 개새끼야 복수할거야 개새끼"라는 유행어도 생기고

"이명박 이 개새끼야 복수할거야 개새끼"라는 이 말이 꽤나 유명해졌는데,

"이명박 이 개새끼야 복수할거야 개새끼"라는 말을 한 용자분은

"이명박 이 개새끼야 복수할거야 개새끼"라는 말을 함으로써 별탈은 없는지

"이명박 이 개새끼야 복수할거야 개새끼"라는 말을 한게 아직도 후회되거나

"이명박 이 개새끼야 복수할거야 개새끼"라는 말을 해서 불이익을 받은것이나

"이명박 이 개새끼야 복수할거야 개새끼"라는 말때문에 겪은 해프닝은 없는지 궁금하다.

 

 

"이명박 이 개새끼야 복수할거야 개새끼"

"이명박 이 개새끼야 복수할거야 개새끼"

"이명박 이 개새끼야 복수할거야 개새끼"

"이명박 이 개새끼야 복수할거야 개새끼"

"이명박 이 개새끼야 복수할거야 개새끼"

"이명박 이 개새끼야 복수할거야 개새끼"

 

아무리 반복해서 들어봐도 그 분이 무사하지 않을것같아 걱정이다.

 

 

(ㅋㅋㅋ)

 

*

 

 

 

왜 난 이걸 이제야 발견한걸까

그저 눈물만 흘릴뿐

 

이렇게 된거 7.30이나 빨리왔으면...

UP UP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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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너 내말이 우습냐?

점점 더워져~

 

(분장실 강선생님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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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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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egend itself

벌써 그리워

 

 

 

 

 

2009년 6월 29일 월요일

네티즌들, 연예인이 조상님 '묘'라도 파헤쳤나?

 

 

 

 

 

 

1868년 조선말, 독일의 상인 오페르트는 두차례에 걸친 통상을 거부당한 뒤 조상의 시신을 신성하게 모신다는 조선인들의 관습을 이용할 마음을 먹고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 시도한다. 이는 결국 미수에 그치게 되지만 '서구인은 믿을 수 없다'는 흥성 대원군의 신념을 강하게 굳히게 되면서 종국에는 '쇄국정책'에 박차를 가하게 만드는 사건 중 하나가 된다. 조선 역사 500년 동안 뿌리깊게 박혀있던 성리학의 '효(孝)'라는 가치를 건들인 것이니 우리는 여기서 대원군의 분노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관광으로 달에도 간다는 21세기, 유교의 교조화가 청산되고 있다는 바로 오늘날에서도 마치 흥선대원군의 것과 같은 엄청난 분노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네티즌들의 연예인들에 대한 분노가 아닐까 싶다.

 

 

두 번 광고출연 했다가는 사람 잡겠네

 

우리나라에는 암묵적인 합의에 의해 정해진 논쟁하면 안되는 대상 몇개가 있다. 군대, 종교, 정치. 대한민국에서 그 세가지를 잘못 건들이면 공자 할아버지라도 살아남기 힘든다. 말 그대로 '가루가 되게 까인다'. 그런데 얼마 전 한 포탈사이트에서 한 여자 연예인이 네티즌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맞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바로 금단의 영역인 '군대'를 '건드렸다'는 이유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미니홈피는 이루말할 수 없이 처참하게 난도질되어 차마 눈뜨고 보기가 안타깝다.

 

 

 

 

욕먹을 짓 한 '광고' 그리고 '이민정'...?

 

글쎄, 나 역시 그녀가 출연한 광고가 네티즌들의 말처럼 '병맛'인 것은 확실히 동의하는 바이다. '이름'조차 없이 군번과 같은 '숫자'로 개인을 나열하는 이 비인간적인 군대라는 곳에 국가로부터 강제로 '징용'되는 역사상의 비극을 보며 '축하'한다는 표현을 쓰는 이 넋 나간 광고, 거기다 '정신 좀 차리겠구나'라니? 이것의 의도가 애초에 무엇이든간에 불순해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왜 이 '병맛' 광고때문에 이민정이라는 연예인이 욕을 먹는지는 조금 납득하기 어렵다. 보통의 연예인이 광고를 촬영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결정권을 쥐고 있을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그러한 권한이 모든 연예인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더욱이 이민정과 같은 신인 여배우라면, 처음부터 광고 선택에 개입했을 가능성은 더욱 낮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여배우가 이토록 욕을 먹어야 하는가?

 

다만, 나에게도 그녀를 좀 다그치고 싶은 것이 한가지 있다면 단지 '노래는 본인이 자원해서 부른것인가?'하는 정도 뿐인데 말이다.

 

              <출처 : 이민정 싸이월드>

 

왜 모든 분노의 집중은 연예인에게 가는가

 

설사 그녀가 광고 콘티를 꼼꼼히 볼 기회가 있었고, 그녀 스스로 만족한 광고였다고 쳐도, 네티즌들의 몇몇 수위를 넘은 비난은 아직까지 인과관계가 부족해 보인다. 광고를 선택한건 이민정 자신일지라도 이 광고의 탄생은 카피라이터, 광고주, 광고 기획사 모두의 합작이다. 그들도 물론 '까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수준이 이 가련한 신인 여배우에게 가해지는 온갖 원색적인 말들의 '테러'만큼은 아니다.

 

이것은 비단 이민정이라는 연예인에 한정된 일은 아니다. 일단 네티즌들에게 한번 '미운털'이 박히면 그때부터는 진위와 상관없이 집단가해가 이어지는 일도 부지기수이다.

 

이것은 명백한 '아래로의 폭력'이다

 

연예인들이 부와 명예를 갖추었다고 우리보다는 조금 더 '위'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말자. 이것은 연예인 자신들도 착각하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다. 조금 '싸가지' 없게 말하자면 신자유주의의 극단까지 달리고 있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연예인'이란 명백히 자신이 가진 '엔터테이닝'을 사고 사고파는 일종의 서비스업에 불과하다. 연예인들은 자신을 팔고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어 먹고 산다. 손님은 '왕'이다. 따라서 하늘이 두쪽나고 예수가 재림한다 할지라도 네티즌으로 명명되기도 하는 구매자인 대중들은 언제나 연예인의 '상전'쯤 되는 셈이다. 커다란 대기업에게도 '불매운동'은 치명타이듯이, 대중이 '관심'을 인질삼아 봉건시대처럼 연예인들을 구속하기 시작하면 그 것은 그들로서는 저항하기조차 두려운 명백한 '아래로의 폭력'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연예인에겐 복지마저 열악하다. 故장자연을 잊었는가. 톱스타만 연예인인것은 아니다. 아직도 연예가에는 법의 손길이 닿지 않는 어두운 그림자를 많이 갖추고 있다. 인권보호수준은 더 처참하다. 故최진실을 잊었는가. 톱스타도 안전하지만은 않다.

 

 

 

까지 말자는게 아니고 좀만 '덜' 까자

 

앞서 내가 주장하고 자 하는 바가 '아예 까지 말자는거'냐고? 또 그렇게 이해하면 섭섭하다. '좌파 축출'한답시고 멀쩡한 사람들을 죽일듯이 까는게 일인 호도전문 조선일보도 살아있는데 우리라고 왜 못하랴. '깔권리'는 존엄하며 누구에게나 있다. 게다가 잘못하는 것을 까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노' 하기 전에 숨 한번 고르고, 어쩌면 저지른 잘못보다 '유명'하다는 죄때문에 더 큰 고통을 받고 있을지도 모를 연예인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보는건 어떨까? 그들도 '연예인'이라는 포장지를 벗겨내면 단지 우리와 똑같은 한 명의 인간에 불과한데 말이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삶

 

'일탈'이나 '루저'와 같은 키치한 코드가 유행이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곳에선 자신을 감추고 '악플'을 다는 행위가 만연하다. 갈수록 살기는 퍽퍽해져가 스트레스는 점점 느는데 그것의 배출구는 마땅하지 않은 게 현대인의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연예인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분노'하는 행위 역시 어느정도 그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약육강식의 비정한 사회에서 '약한 놈'이 진짜 '강한 놈'에게 '분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졌고 그래서 '우리'라는 약한 놈은 '연예인'이라는 또 다른 약한 놈을 본능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해본다. 구한말 조상의 묘를 파헤친 범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취급되는 연예인들에 대한 그 극렬한 분노가 만들어내는 끓어넘치는 관심을 정치가나 소수자들이 겪고 있는 부조리에게 돌려보는건 어떨까, 하고. 우리가 '진짜 강한 놈'에게 '분노'하는 방법을 다 잊어 버리기 전에 말이다.

 

그러한 분노야 말로 당시 신미양요와 병인양요를 이겨냈던 '건전한 민중의 건전한 분노'이자, 우리사회를 윤택하게 만들수 있는 또 하나의 '힘'이 되지 않을까?

 

 

 

미국애니 사우스파크, 故마이클잭슨 희화화?

 

 

 

평화로운(?) 사우스파크, 어느 날 마을에 한 아이와 아버지가 이사를 온다.

 

 

어디서 많이(..^^;) 본 것같은 아이아버지의 이름은 '마이클 제퍼슨'. 그의 집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없는것이 없는 그야말로 '천국'. 그리하여 네명은 악동은 제퍼슨씨의 집으로 아이들을 초대하여 재미있게 놀게 된다.

 

 

어느덧 마을의 모든 아이들과 친해진 제퍼슨씨. 그런 그를 위해 사우스파크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그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부모들은 단지 아이들의 순수함을 사랑한다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조금 별난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한편, 마을에 흑인이 이사를 왔다는 제보(?)를 받게된 사우스파크 경찰서.

 

 

단지 '흑인'에 '부자'라는 이유로 그들은 새로 이사온 '제퍼슨'을 잡아들이기로 결심한다.

 

 

경찰이 이렇게 열심히 제퍼슨씨의 빈집에서 증거 조작을 하는 동안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동심에 빠져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동네 꼬마의 집에 찾아간다.

 

 

한밤중에 찾아와 꼬마보다 더 꼬마처럼 피터팬 역활에 열중하는 제퍼슨씨.

 

심지어 제퍼슨씨의 아들은 한밤중에 혼자서 밖을 돌아다니다 동네 꼬마에 의해 구출되었고, 내일 학교에 가야한다며 아이가 핀잔을 주어도 아랑곳 하지않는 그는 마치 자신이 어른임을 망각한 듯 보인다.

 

그리고 계속해서 '흑인'인 제퍼슨씨를 체포하기 위해 잠복근무하고 있던 경찰들.

 

 

제대로 된 이유한번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면서 단순히 '흑인'이기에 제퍼슨씨를 잡아들어야 한다는 일념하의 이 성실한(?) 경찰들은 드디어 아들과 함께 집에 도착한 제퍼슨씨를 발견한다.

 

 

헌데 그들이 보기엔 하얀피부를 가진 제퍼슨씨는 흑인이 아닌것 처럼 보이고 이내 경찰들은 흑인이 아닌 사람은 곧 결백한 사람이라는 황당한 결론을 내게 된다.

 

그러나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챈 제퍼슨씨는 곧바로 아들과 함께 은둔 생활을 시작한다.

 

 

그 생활에 친구가 없어진 아이는 외로워 하고 제퍼슨씨는 점점 이성을 잃어 급기야 아들을 위험에 빠뜨리기까지 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코성형의 부작용까지 겪게 되는 제퍼슨씨.

 

 

한편 저번에 흑인을 감옥에 보내지 못했던것이 못내 아쉬웠던 사우스파크의 형사는 제퍼슨씨의 뒷조사를 해본다.

 

 

'흑인 부자'이기때문에 이사 오기전 동네에서도 많은 일을 겪었던 제퍼슨씨

 

 

 

제퍼슨씨가 흑인이라는 것을 확한 경찰들은 이때다 하고 그를 잡으려 달려든다.

 

 

 

 

 

 

가난한 잡담 2

 

 

 

 

 

 

 

 

*

 

 

 

사진 폴더함을 정리하고 있는데 유독 물 먹는 사진이 많았다. (찍은 날이 같은 날이긴 하지만) 요즘이 덥긴 덥다. 여름인가보다.

 

작년 여름때 타국의 겨울을 경험하느라 1년 내내 겨울을 겪었던지라 모처럼 맞이한 여름이 반갑다. 근데 쓰레기통을 비우거나 쌓인 설거지를 할때 곁에 모여드는 날파리나 밤마다 모기떼를 쫓아내야 되는건 너무 귀찮은 일이다.

 

덕분에 왕왕 내 방에 뿌옇게 진을 치곤 하는 것은 '에*킬라 <오렌지향>'. 근데 벌레보다 내가 먼저 골로 가겠다.

 

 

*

 

 

 

덧, 이걸 감히 <오렌지향>이라고 이름 붙인 사람은 오렌지를 안먹어 봤음이 틀림없다.

 

 

 

*

 

 

 

간만에 내가 모시는 지름신과의 접신, 피서용이라며 20만원어치의 도서를 질렀다.

웹서핑이라는 선악과를 먹고 돈 있을 때는 책 파는데 가면 안된다는 사실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오늘도 세끼를 라면으로 떼우는 수행중.

 

Oh, GOD!

 

 

 

*

 

 

 

 

책 한권에 녹차 티백 하나 넣은 텀블러를 끼고 몸을 눕혀 천장을 보니...

 

 

형광등을 갈아야 겠다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귀찮다.

 

 

 

*

 

 

 

여러분, 내가 완벽하게 커피를 끊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간답합니다. 단지 돈이 없으면 됩니다.

 

비겁하게 돼지저금통에게 줬던 돈을 도로 뺏을정도의 빈궁함이면?

...100프롬니다!

 

 

 

*

 

 

 

덧, 그러니 커피 끊으실 분은

아래 계좌번호로...

 

1234-56-7-...

 

 

 

*

 

 

 

영세상점을 이용하는 것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프렌차이즈와 유통 대형화에 대항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결심 하에 행동에 들어간지 언 한달.

 

가격과 이익을 따져묻는 '똑똑한 소비자'라기 보다는 더 먼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것이라며 매번 구멍가게로 향했었지만, 따져보니 대형마트라고 더 싼것도 아닌 것 같다. 특히 동네 커피전문점에 비해 유명 프렌차이즈 커피 전문점은 '폭리'에 가까웠다.

 

혼자하는 보이콧, 이거 꽤 괜찮은데다 나름의 낭만도 있다.

 

 

 

*

 

 

 

 

냉동실 귀퉁이에서 꽁꽁 언 훈제 연어를 발견했다.

 

손에 든 라면냄비의 모락모락 나는 김을 바라보다

'내가 지금 무슨생각을...!'하고 얼른 다시 제 자리에 넣어 두었다.

 

 

둘이 합쳐 무슨 맛일까 궁금하면 막장인가효?

 

 

 

*

 

 

 

우연히 발 밑을 내려다 봤다.

 

의자의 네발 사이로 아이팟을 충전한답시고 켜두었던 컴퓨터와 노트북 어답터, 카메라와 휴대폰 충전기의 전선들이 수챗구멍에 몽우리진 머리카락마냥 흉측하게 엉켜있었다.

 

나 순간 섬뜩했어.

 

 

 

 

*

 

 

 

 

요즘 동양고전을 읽고 있다. 공자왈 맹자왈 노자왈.

 

근데 오늘은 관광으로 달에도 간다는 21세기, 이게 꼭 '완벽한 정답'은 아니란 생각을 '감히' 해본다.

 

 

 

 

 

 

 

 

"그래도 영화인데 그렇게 멍청할리가" 비평가 NC

 

 

 

 

 

 

트랜스포머2의 개봉을 맞이하여 새롭게 리뷰가 올라오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오랜만에 영화 비평가 NC(Nostalgia Critic)의 홈페이지를 확인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트랜스포머2라는 이름으로 짧은 영상 하나가 올라와있다. 정지화면에 깔린 경고부터 예사롭지 않다.

 

 

<In honor of his very first episode, the Nostalgia Critic will now review the latest Transformer movie: Transformers - Revenge of the Fallen>

 

그의 제일 첫번째 에피소드의 명예를 걸고, NC는 지금부터 가장 최근의 트랜스포머 영화를 리뷰할 것입니다 : 트랜스포머2 - 패자의 역습

 

 

클릭하자 동영상이 뜨고, 그 속에서 맹세대로 트랜스포머2를 열심히 리뷰(?)하는 그의 모습 덕분에 간만에 웃어본다. 근데 잠깐, 왜 웃냐고? NC가 누구냐고? 있다. 유투브에서 '포켓몬스터 <첫번째 영화>'를 비평하다 포켓몬들이 쏟은 눈물로 주인공을 살리는걸 보자 "에이, 말도안돼. 설마, 그래도 영화인데 그렇게 멍청할리가"를 외치던 촌철살인의 한 안경쓴 백인 사나이가.

 

사실 일년전쯤 유투브를 강타했던 이 남자는 이름처럼(Nostalgia Critic·추억 비평가) 순수했던 우리네 어린시절의 친구였던 만화나 영화따위를 찾아 비평한다. 유행의 속도가 남다른 웹에서 지금은 '한물간' UCC 스타인지는 잘 모르지만 어렸을 때는 눈치채지 못했던 수많은 오류와 말도 안되는 인과관계 등을 유쾌하게 꼬집어 나가는 NC의 비평은 적어도 나에겐 아직까지 꽤 재미가 있다. 가끔 생각이 날때마다 그의 영상을 찾아보는 나는 사실 일종의 '팬'인 셈인데, 새로운 업데이트물을 본김에 오늘은 '주관적으로 뽑은 NC의 작품 BEST3'를 선별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 구글링 결과 이미 한국어로 번역이 되있는 영상이 있길래 자막 만들기 귀찮아 웹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영상을 올립니다. 추후 이 포스팅에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면 댓글 달아주세요(^^). 즐감!

 

 

 

 

(3) Power Ranger

 

 

 

 

(2) Pokemon, #1 movie

 

 

 

 

(1) Batman and Robin

 

 

 

 

* 최근영화이기도 하고 다른 비평과는 달리 '리뷰'였기때문에 순위에 넣지 않았던 영화 클로버필드에 대한 리뷰도 번외로 첨부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제일 오래 웃었던 리뷰)

 

 

(*) Cloverfield (Review)

 

 

 

 

 

 

 

본문에 언급된 트랜스포머2-패자의 역습을 포함한 Nostalgia Critic(NC)의 모든 비평은 그의 공식 홈페이지 (http://thatguywiththeglasses.com)와 함께 유투브 공식 홈페이지 (http://www.youtube.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잡담 1

 

 

 

 

 

 

*

 


육식과 인스턴트 음식 위주의 식단, 잦은 결식에 끝없는 폭식과 과식.
거기다 규칙적인 생활에 대한 개념리스, No sports의 완벽한 라이프 슬로건까지!


만약 내가 장수한다면 그것은 신의 실수.

 

 

"놀고 있네" 그들이 주장하는 '사이비' 진화론

 

 

 

 

 

 

 

해로써 <종의 기원>의 저자 다윈의 탄생이 200주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봉사를 가장한 위험지역으로의 강제포교를 통제하지 못했고 장소를 불문하고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불쾌함을 조성하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전부 몰아내지 못했다.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2MB 장로 정권을 맞이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종교전쟁'이라는 신간이 새로운 화두를 던지면서 '무신론'에 관한 대중의 관심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사실 신이 있다 없다에 관한 논쟁의 해답은 아직까지 '생명은 태어나고 죽는다'와 같은 사실처럼 명백히 밝혀진 것이 아니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종교는 우파냐 좌파처럼 단지 각자 이념 상의 문제라고 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대한민국에서 종교로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자살행위이다) 그러나 내가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개인의 신념이나 성역의 영역으로 남아있길 바란다며 자신들을 방어하는 종교들이 왜 나서서 '먼저' 과학이나 논리로 넘어오냐에 대한 것이다.

 

특히 왕왕 가해지는 기독교의 허무맹랑한 진화론 공격은 굳이 진화론 전문가가 아닌 나같은 사람까지 황당하게 만드는데, 그것이 지식에 대한 폭력수준일 정도로 저급하여 심히 우려가 된다.

 

백문이 불여일견. 한국 기독교내에서 주류 세력으로 추앙받고 있는 목사 '장경동', 그가 아까운 전파를 열심히 낭비하며 TV에서 설교했던 소위 "진화론 비판"에 대해서 인내심을 갖고 들어보자.

 

 

 

 

믿을 수 있겠는가? 혼자만의 이 눈부시게 창의적인 이론을 이토록 당당하게 '강의'하고 있는 광경이...? 원숭이가 진화하여 사람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곧 진화론이라니... 이것은 학창시절 매번 과학을 죽쑤던 나에게조차 과히 충격으로 다가오는 경악스러운 수준의 과학상식이다.

 

장경동 목사만 아는 사이비 진화론은 몰라도 적어도 매년마다 미싱링크와 같은 새로운 증거와 다양한 논문을 쏟아내는 진짜 '진화론'은 원숭이가 인간의 할아버지라고 말하는 황당한 학문이 아니다. 단지 원숭이와 인간이 공통 조상을 가졌다고 주장할 뿐이다. 그럼에도 대중 앞에, 그것도 자신이 사랑해 마지 않는다는 '신자들'앞에 서서 '무식'을 운운하며 낄낄대는 그를 보라.

 

또한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아무런 준비조차 하지않은채 자신의 망상에서 비롯된 '잘못된' 지식을 설파하는 장경동 목사의 이와같은 저질스러운 행위는 먼저 과학적 근거나 사실의 시비를 떠나 비난받아 마땅한 오만이고 그를 신뢰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만이다.

 

 

 

인간들은 1500년 전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했고, 500년 전에는 지구가 편평하다고 생각했어. 5분전에 너는 지구에 인간만 사는줄 알았지. 내일은 어떤 진실이 기다릴까?


영화 <맨인블랙>

 


 

인간은 참 무지한 존재이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그 무지함을 극복하고 싶어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신이라는 존재의 유무를 밝히고 싶어했고,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서 '진화론 vs 창조설'이라는 형태로 언쟁을 이어오기도 했다. 허나 오늘 이 글에서 내가 관철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 진리냐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는 종교가 진화론에게 조금은 더 관대해 질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오늘날을 포함하여 그들의 도그마가 지배했던 수천년의 역사동안 딱히 가시적인 증거를 발견해내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다수의 대중이 종교의 예기간을 끊임없이 연장해주고 있듯이 말이다.

 

실제로 현시점에서 진화론은 많은 부분에서 세상의 이치를 가장 잘 설명할수 있는 이론이며 지금도 좋은 연구 성과를 낳고 있다. 앞으로 이 것이 어떤식으로 진행될지는 예측할 수 없으나, 진리에 대한 합리적인 도출을 위해서는 적어도 진화론이 이런 저질스러운 사이비 방법으로 폄하당하는 공격 대상이 되어서는 안될것이다.

 

물론 오직 종교적인 믿음에 의해서 '진화론'을 거부하겠다면 '선교'가 그러하듯 강제로 그를 설득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것은 존엄한 개인의 선택이며 나 스스로도 나와 '다른 의견'과 '틀린 의견' 정도는 구분할 재간머리는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수에게 노출되어 있는 TV 프로그램에서 '본질' 자체를 왜곡하면서까지 200년 이상 된 학문을 조롱거리로 만들며 선동하는 것을 '다른 의견'으로 존중해 주어야 할만큼 가치가 있을까? 이것은 바로 그들이 그렇게 몰아내야 한다며 목에 핏대를 세우는 '사이비' 그 자체는 아닐까? 우리 모두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

 

 

2009년 6월 28일 일요일

'88만원 세대'의 눈으로 본 <88만원 세대>

 

 

 

 

 

 

 

교복을 입은 여학생과 어머니가 참고서와 문제집을 잔뜩 집어 계단대에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학생이 그녀의 어머니에게 책 한권을 더 사겠다고 떼를 쓴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냥 읽는 책 사려고 그러는거 아니야?"라고 반문한다. 여학생은 "어차피 논술 준비해야되"라고 답한다. 어머니는 다시 한번 "일단 점수나 받고 논술 준비해" 하고 받아친다. 결국 들고있던 입시용 서적만이 계산대를 통과한다. 이것은 올해 2월쯤 내가 자주가던 서점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책이 '그냥 읽는 용'과 '대학 가는 용'으로 나뉜다. '그냥 읽는 용'에서 '논술 용'과 '아닌 용'으로 나뉜다. 그런데 일정 기준의 점수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나마도 볼 수가 없다. 대한민국의 10대는 정해진 구분법 없이는 '책'도 마음대로 읽기 어렵다. 비극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20대는 어떠한가? 언제부터인가 신문 지면에 '현재의 20대에게는 희망이없다'라는 끔찍한 일반화가 버젓이 인쇄되고 '도전정신이 없는 20대' '무식한 20대'라는 인격모독 수준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애정과 참된 깨우침이라는 가면을 쓴 '한 세대를 향한 평가절하'가 공공연히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기성세대가 내린 그 정의가 정말 20대 전부의 가치를 표현한다고 믿는지, 20대 스스로부터 자조섞인 반성의 목소리가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 열심히 노력하자' '더 열심히 공부하자' 건설적인 자기설계로 나아가나 싶다가도 '무엇을?'하고 물으면 '토익·토플을'하고 대답한다. 비극이다.

 

나는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보면서 내가 그간 느끼고 있었던, 그러나 나의 짧은 지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던 사회구조의 병폐에 대해서 통렬한 해답을 얻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회 부조리와 세대간 갈등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신중하면서도 명쾌하지만 한편으로는 한 개인으로써 무력감을 느낄만큼 적나라했다.

 

십대시절부터 익혀온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한국판 배틀로얄식 서열경쟁, 극도로 주입된 치열한 이 생존투쟁이 어느새 88만원 세대인 우리 세대에겐 너무도 교조화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중간중간 소름이 돋는다.

 

무의식중에 나 자신이 사회적 동물로써의 가치가 이탈했다 믿고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매몰찬 승자독식주의 이분법에 스스로를 노출시켜 자학했던 것도 돌이켜 반성해본다. 물론 현실적으로 충분히 성취가 가능한 부분을 평가절하한다거나 고취된 자립심을 폄하하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선진국의 구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우리나라의 기괴한 변종 경제시스템을 먼저 고려해봐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면 된다'는 식의 무대포 정신으로 비효율적이고 승자독식주의 체제에 철저히 편승한 자기운영을 하는것은 오히려 거시적 경쟁력을 악화하고 약자와 약자 사이에서의 소모전으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게 내 결론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세대간 착취구조와 경제모순을 고려해 본다면 20대 초반인 우리나라의 대학생들이 지금 당장 자립을 한다는건 자살행위에 가까운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또한 20대 전체가 스스로 도태되고 무능하다고 여기는 것 역시 사회적 폭력이라는 것, 사회가 필요이상으로 약자를 고문하고 있다는 것 역시 더이상 20대의 합리화를 위한 변명이 아닌 명명백백한 '사실'임은 자명하지만 또한 나열된 이유들만을 탓하며 우리 20대가 완전 무결함을 주장하고 싶지도 않다. 나아가 '진보'나 '공동체'라는 낭만적 가치에 대한 부재에 대해서도 자숙하는 바이며 우리가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없이 이 현상이 소나기처럼 지나갈거라 생각할만큼 순진하지도 않을 거라 믿는다.

 

그러니 나, 너, 우리 "88만원 세대"는 무의미한 자학이나 복종을 멈추고 '더 열심히 쟁취하자'. 이번에 무엇을? 이라고 묻는다면, '토익·토플'이 아닌 '바리케이트와 짱돌'을 이야기 하자.

 

기성세대 역시 조금만 더 '자비'를. 조금만 더 '애정'을. 살벌한 이 사회에 움츠러든 88만원 세대를 위한 작은 '배려'를!

 

서로 비난을 하고 책임을 따져 묻기엔 우리 사회는 지금 너무 절박한 상황에 와있는 것은 아닐까? <88만원 세대>를 읽고 독자들이 저자의 시각에 동의 하든 하지 않든, 급속도로 붕괴해가는 사회의 통합과 세대간의 타협이 이뤄져야할 시기임은 분명해 보인다.

 

 

 

 

여성들에게도 '옷 벗을' 권리를…(?)

 

 

 

바야흐로 노출의 계절 여름이다. 특히 지금 우리사회에는 비키니에서 한층 발전된 형태인 모노키니의 열풍과 네이키드 뉴스의 국내 상륙으로 여성의 노출에 대한 여론이 한층 가열되고 있는 상태이다. 사실 성별을 막론하고 노출과 그 수위에대한 의견이 분분해왔지만 세상이 유독 여성의 누드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 온것 또한 부정하기 힘들다.

 

그러나 한편 앞서 언급한 네이키드 뉴스 외에도 항공사 '에어 뉴질랜드'에선 승객들의 관심을 얻기위해 기내에서 방영되는 안전수칙을 누드로 촬영하기도 하고 <뉴스링크/에어 뉴질랜드, 승무원의 누드 기내안전 비디오 화제> 최근 스웨덴에서는 한 여성단체가 실내수영장 내에서의 여성 톱리스(topless·토플리스)를 금지하는 것은 명백한 성차별이라는 주장 끝에 요구사항을 쟁취하기도 하는 등 <뉴스링크/다 벗는 것도 아닌데…> 그 고정관념에 대한 파격적인 파괴양상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오늘은 남성이 아닌 여성의 상체탈의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파파라치에 찍힌 시에나 밀러의 톱리스>

 

 

 

여성과 브래지어

 

특이한 몇몇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경우, 특별한 불만이나 불편없이 무작정 문제점을 제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로 비추어 볼때 여성들이 주장하는 '톱리스'의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에 따른 '불편함'에 있으리라 믿는다. 나 역시 한명의 여성으로써 단언컨데 남성에겐 해당사항없는 여분의 속옷인 브래지어에 대한 불편함을 단한번도 호소해본적 없는 여성은 아마 없을것이다. 또한 진지하게 왜 꼭 브래지어를 착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찰해본 적도 드물것이다.

 

브래지어는 <브래지어, 가슴 탄력에 도움 안돼>압박하기도 한다 <뉴스링크/노 브래지어 여성이 더 건강?>는 것은 이미 상식선에 속할 것이다.

 

 

여성 인권 단체들이 주장하는 여성 톱리스의 근거는 다양하다. 여성의 상체노출을 금기시 하는 것은 여성의 가슴을 단순히 성적인 대상으로 보는 것 등. 하지만 가장

 

 

 

 

 

 

 

어디까지가 '권리'일까

 

'권리'란 어떤 행동을 하거나 이익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이나 자격이란 뜻을 가졌지만 자격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때만 진정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들에게 옷벗을 권리(?)가 있다면 타인에게는 그로인해 불쾌해지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것이 침해 되었다면 그것은 권리의 남용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이다.

 

 

 

 

브래지어의 의무적 착용강요, 성차별 혹은 여성학대?

 

사실상 터부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인공적으로' 도출된 약속의 한 종류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 합의를 이끄는 주체인 사회 구성원이나 바뀌면 그것은 촌스럽고 철지난

악습이 되어있을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아직 우리사회는

 

 

 

 

 

 

보여주고 싶어 안달난 헤픈 '여자'?

 

안타깝지만 우리는 포털의 뉴스에 달린 댓글 등에서 자신의 몸을 노출하는 여성에 대해 성적으로 비하하는 내용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수 있다. 몸매에 자신감이 넘치냐는 둥 그렇게 보여주고 싶냐는 둥 헤프다는 둥. 단지 노출이란 일단락을 갖고 한 여성을 그런식으로 폄하하는것이 참 쉽다는 생각에 가끔 서글프기도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사실 그런 댓글을 남기는 사람 중 적지 않은 수가 예상외로 '여성'이라는데에 있다.

 

마치 조선 후기, 남편이 죽었을때 그의 부인에게도 역시 자결을 권하며 은장도를 건냈던 사람이 정작 같은 여자인 시어머니였듯이 여성들 스스로가 편견이란 사회적 틀에 제 몸을 맞추고자 하는 것이다.

 

과연 여성들 스스로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실을 권리라고 할 수 있을까?

여성들 스스로가 계몽하고 자신의 몸을 아낄 줄 알아야함

 

 

 

2009년 6월 27일 토요일

폭력과 상스러움 <진중권의 엑스리브리스>

 

 

 

 

 

 

 

 

흔히 '진중권'이라는 스타 지식인에 대해 어떤 키워드를 가졌든지 게 중 몇몇의 사람들이 꼭 그를 대고 하는 말이 있다. "진중권은 맞는말을 참 잘하는데, 말투가 거슬려." 혹은 "피도 눈물도 없이 너무 차가워."

 

아무리 그가 대중의 오해를 허락하는 타입이라지만 그의 열렬한 독자인 나인지라 그 폄하를 두고보기 힘들다.

 

사실 '맞는 말'이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단순히 '말투'를 지적한다는 것은 그저 감정적 비난에 불과할 뿐더라 그에 앞서 그가 차갑다는 것은 소통과 가치관의 차이에 따른 하나의 '편견' 아닐까 싶다. 실제로 진중권이라는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는 알길이 없다. 그를 사적으로 만난적도 없을 뿐더러 어떤 한 인간의 '실체'를 안다는 것은 내가 언제 죽을지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만큼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력과 상스러움>에서의 진중권은 굉장한 휴머니스트다. 그는 우리가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폭력을 고발하고 그들을 논리적으로 변호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휴머니스트'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구태여 이러지말라 저러지말라 곰팡이 핀 구한말 잔반 늙은이들처럼 윤리적 설교를 들어달라 칭얼대지도 않는다. 단지 그의 눈으로 보는 기괴한 사회구조를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사유로 유려하게 풀어나간다.

 

그가 저지르는 엄숙주의에 대한 조롱 역시 웃을 일 없는 세상에서 참 재밌는 요기거리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노혜경 시인의 서평에서처럼 극우세력들에게 '왜 꼬워?'라고 묻는 진중권식 비꼬기에 웃지 않을 독자가 어디 있으랴.

 

또한 양복쟁이들만 숨쉬고 사는 세상에서 보헤미안으로 살아가는 진중권의 파격적인 똥배짱에 나는 한번 더 뒤집어진다. 그는 마치 오늘 당장 사표내려는 직원처럼 우리 사회의 사장쯤 되는 척하는 비양심 기득권 세력에게도 거침이 없다. 그의 기준에 비춰 옳지 않다는 판정이 나오면 그 사장님의 이름이 '국민작가'든 '조선일보'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노조같은 타협점을 찾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합의는 무슨, 나 오늘 사표낸다니까?는 식이다. 독자는 그 속에서 또 한번 통렬함을 느낀다.

 

책 밖으로 나간 진중권은 어떤가. 세상속에서 대중과 '꼭지가 돈 채' 토론도 해보고 '낚시질'도 하고 촛불도 켠다. 그에겐 실천과 소통이라는 갖추기 힘든 미덕이 또 하나 숨겨져 있었던것이다. 거기다 그는 본업인 '미학'에도 충실하다. 같은 미학과를 나온 "누구와는 다르게"말이다.

 

이 책의 초판이 인쇄된 2002년, 그가 진단한 그 때의 사회 모습은 2009인 지금까지 대부분이 유효하다. 우리 시대 빛나는 지성인의 날카로운 진단을 책 한권으로 공유하면서도 마지막장을 덮는 순간까지도 참 씁쓸한것은 그 때문일 테다.

 

 

미국애니 사우스파크 속 YouTube 스타들

 

 

 

 


 

심할때 가끔 침대에 누워 터치로 유투브 동영상을 구경하곤 하는데, 한때 유투브를 강타했던 '인터넷 스타'를 한자리에 모아놓은 사우스파트 에피소드가 있어 늦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 * * South park E1204에 등장한 순서대로

 

(1) What what in the butt

 

 

버터스가 패러디한 'What what in the butt'은 끈적한 게이풍 노래로 번역해보자면 '무엇이 내 엉덩이에 있을까' 정도; 가사가 뒤집어진다. "만약 니가 원한다면, 난 너에게 힘을 주지. 단지 신사답게 굴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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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hocolate rain

 

 

DC의 빠삐놈처럼 많은 리믹스 버전을 만들어냈던 초콜릿레인. 번들거리는 얼굴에 후줄근한 흰면티를 입은 이 흑인 사내는 자작곡인 초콜릿레인을 맞지않는 굵직한 저음으로 진지하게 부른다. (중간중간 영상에 뜨는 코멘트마저 진지하다) 허나 무슨 매력에서인지 계속 흥얼거리게 되는 초콜릿레인의 중독(?)은 네티즌으로부터 '병맛이지만 중독된다' '병신이지만 멋있어' 등의 찬사를 낳게 되어 토크쇼까지 출연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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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ron guy & Numa numa guy

 

 

그들을 보는 네티즌들의 반응은 오타쿠를 보는 우리네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WHAT A NERD' 혹은 '존중입니다 취향해주시죠'와 같이 제각각이라는 것. 특히 Numa numa같은 경우에는 우리에게 현영의 '누나의 꿈'으로 알려져있는 노래의 원곡이다. 역시 온오프를 가리지 않고 많은 패러디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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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Starwars kid

 

 

사실 이 영상엔 '왜 이게 유명한지 모르겠다'라는 댓글이 꽤 많은 수가 달려있다. 나 역시 처음 30초정도를 관람할때는 그러했다. 허나 배경음악은 물론 아무런 의도나 생각도 없어보이는 단순한 몸부림은 '아! 이것이 돈오란 말인가!'와 함께 참을수 없는 깨달음을 얻게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굳이 그 '인기'에 질문에 답해보자면, '제, 제발 그, 그만해...!'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손발 오그라드는 것의 유미성'정도 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 (사실 저 영상이 유포된게 이 아이의 자의가 아니듯 하여 네티즌들이 다소 짖궃게 그를 놀림감으로 만든것이 한편으로는 참 불쌍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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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e Sneezing Baby Panda

 

 

제목 그대로 재채기하는 아기 판다의 귀여운 영상. 아쿠쿠, 우쭈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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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Dramatic chipmunk

 

 

우리나라 웹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틱 다람쥐. 원본은 미니모가가 출연한 일본의 한 프로그램이 출처라고 한다. 5초 정도의 짧은 영상 속 작은 다람쥐가 일으킨 패러디 열풍은 원본 영상을 능가하는 재미를 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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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Leave Britney alone! - Chris crocker

 

 

성별을 구별하기 모호한 이 남자의 정체가 한때 유투브 사용자들 사이로 이슈가 된적이 있었다. 까만 눈화장이 난잡하게 번져있는 얼굴로 '브리트니(스피어스) 좀 내버려둬!'라고 울부짖던... 역시 여타 히트영상과 같이 동정과 거부의 다양한 반응으로 화제가 되었으나 최근에는 유명세를 통한 다양한 활동으로 단지 브리트니를 이용하기만 했다며 그를 비난하는 의견이 많이 있다. 원본을 찾기 힘들정도로 엄청난 패러디와 리믹스를 양산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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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Laughing baby

 

 

재채기하는 판다와 같이 아기의 웃는 모습을 담아낸 귀여운 영상.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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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Afro ninja

 

 

이렇게 짧은 영상으로 이렇게 길게 웃길수 있다니. 이 영상과 나랑 코드가 맞나보다. 나는 정말 보고 뒤집어 졌었다. 특히 뒷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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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파크는 공식 사이트인 http://www.southparkstudios.com에서 전에피소드를 공개하고 있다. 오호! 쾌재라! 그러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가서 무료로 시청해보고 요 네명의 악동에게 빠져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