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예전에 풍산개 한마리를 얻어온 적이 있었다. 문명의 때가 묻지않은 천연기념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사납고 무서울 줄만 알았는데 막상 아빠가 데려온 건 상자안에서 꼬물거리는 뽀얀 강아지 한마리였다. 진달래색의 배를 뒤집은 채 세상 모르고 자던 그 녀석은 생각보다 발육 속도가 좋아 한달이 채 되기도 전에 아파트에서는 더이상 기를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해 버렸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다 엄마가 아끼던 화분들을 망가뜨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추방행으로 결정, 결국에는 아빠 공장으로 쫒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움직임이 많은 녀석에게는 오히려 활동 공간이 넓은 공장이 더 좋은 보금자리가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그 후 아빠 공장에 워드 작업따위를 도와주러 갈 때나 가끔씩 보곤했던 녀석은 점점 푹퍼지기 시작해 흡사 하얀색 찐빵으로 변해갔다. 돌이켜보면 날렵한 풍산개답지 않게 옆구리에 군살을 줄줄 달고 반갑게 꼬리를 흔들던 녀석은 참 해맑았다. 아무리 공장엔 움직일 곳이 많다지만 그래두 따로 밖에 나가서 산책도 좀 시켜주고 그러지. 나는 아빠의 무신경함을 탓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는 동물을 그닥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처음 개를 입양하게 된 것도 자의가 아닌 거래처의 선물 비슷한 것을 통해서 였다. 본성을 살려 뛰어난 사냥개로 길러보겠다 몇번 훈련시킬 때면 아빠는 녀석에게 다소 무리수로 보이는 것들을 가끔 요구 하곤 했는데ㅡ티비에서 보던 접시던지기라든지ㅡ 그럴때는 녀석이 안쓰럽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이름도 '풍돌이', 성의라곤 찾아보기 힘든 작명이었다. 그래도 녀석은 참으로 아빠를 잘 따랐는데 나는 내심 녀석의 그런 넉살 혹은 충성심이 대단하다 생각하여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가끔 간식도 물려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일년 즈음 지났을까 아빠 공장이 이전을 하게 되어 사정상 개를 기르기 어렵게 되었다. 부지는 확장되었지만 기계가 늘고 여러모로 개가 있기엔 위험하다는 판단이었다. 결국 녀석은 우리집에서 아빠공장으로 아빠공장에서 공장 옆 카센터로 또 다시 이사를 가야했다. 생각치도 못했던 녀석과의 이별에 아빠는 꽤나 여러 생각을 하는 듯 해보였다. 그리고 몇일 뒤 엄마가 나에게 그에 대한 말을 건냈다.
"아빠가 풍돌이 카센터에 보내고 많이 속상한가보다"
이유인 즉슨 카센터 주인이 말을 안듣는다고 풍돌이를 때린다는 것 때문이었다. 나는 평소 아빠의 풍돌이에 대한 무정함을 비춰 생각해 아무렇지 않게 되물었다. 아빠도 풍돌이 막 걷어차고 그러지 않았나? 그러자 엄마는 질색하며 때리기는 무슨, 애기마냥 얼마나 예뻐했는데ㅡ 하는것이었다. 약간의 신선한 충격. 나는 속으로 내내 아빠의 야속함을 타박하곤 했었는데...
사실 풍돌이가 타견(犬)에 비해 좀 더 풍만했던 것은 산책을 시키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빠가 녀석을 너무 예뻐한 나머지 이것저것 너무 많은걸 먹여서 그랬던 거였고 사냥개 훈련도 그냥 놀아준다는 말이 쑥스러워 그랬던 거고 예쁘니까 이것저것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컸던거였다. 더 얘기를 들어보니 아빠가 아주 늦게 들어왔던 한번은 풍돌이가 아파서 데려간 동물병원복도에서 혹여나 무슨 큰병일까 초조하게 기다렸기 때문이란다.
사실 아빠는 다만 그 방식이 서툴렀을 뿐 아빠만의 방식으로 녀석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녀석을 가뭄에 콩나듯 들여다 봤던 주제에 난 뭘 알았다고 내 방식대로 예뻐하는 것만 진짜라고 믿으며 시건방을 떨었던걸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빠는 경상도 남자라 무뚝뚝하고 동물엔 정을 안줄거야'라는 내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애정을 갖고 바라보기만 했어도 아빠가 얼마나 풍돌이를 예뻐했는지 쉽게 알아차릴수도 있었을것 같았다.
나는 쇼파에 누워 잠들어있는 아빠를 바라보았다. 리모컨을 쥐고 있는 손가락에 시선이 고정된다. 손 마디마디가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와 삶의 질곡을 표현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속으로 아빠가 개에게 더 관심을 쏟기를 바랬던 나는 아빠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졌을까... 왠지 눈물이 핑돌았다. 지금껏 해온 오해가 미안하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는 아빠에 대한 나의 무관심함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타박받아야 했던 사람은 사실 나였던 것이다.
네.. 아버지 세대엔 특유의 낭만이 있는것 같아요...
답글삭제너무 자책하지는 마세요... 그냥 사랑한다고 아버님께 한번 더
말하시고 표현하면...
저에게도 이리저리 날뛰던 강아지가 있었는데...
잘 읽고 갑니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
저희 부모님도 단독주택으로 이사하시면서 백구를 한 마리 얻었는데 특히나 아버지께서 이뻐라하십니다
답글삭제강아지가 귀엽고 똑똑하다고 만날 자랑하시네요
어머니 더 주무시라고 주말이면 아침밥도 직접 하시고 하여튼 경상도 남자치고는 특이한 분입니다 :D
공부한다고 타지에 나와있어서 자주 찾아뵙지는 못 하는데, 대신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겠습니다
글 잘 읽었어요 :)
울 아부지는 한참동안 애기를 별로 안좋아하는줄 알았음. 근데 웬걸-_- 애기 노는거 보면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능...다만 울 아부지가 춈 무섭게(?)생겨서 애들을 안으려고 하면 울어싸서 나름 신경쓴다고 안아버릇하지 않아서 생긴 오해;;;
답글삭제비밀 댓글 입니다.
답글삭제아, 글 잘쓰시네요..
답글삭제저두 좀 조리있으면서 재미나게 글좀 썼음 하는 바람이;; ㅎㅎ;
옆구리 군살 줄줄에 이미지가 생각나서 한참웃었네요.. ㅋㅋ
나름 심각한 글인데, 잘읽었습니다.. ^^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갖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답글삭제가족들이나 친구들, 나한테 보이는 모습만을 항상 봐오다 다른 모습을 보면 왠지 낯설지요. 그리고, 이상하게 생각되구요. :-)
@백조트래핑 - 2009/07/14 12:59
답글삭제네 정말 그런듯 (^^)
글 올리고 바로 아빠한테 문자드렸어요. 무지 반기면서 좋아하시더라구요. 항상 글 올리면 좋은 댓글 달아주시는 백조트래핑님 감사드려요 (^^)
@chatii - 2009/07/14 14:53
답글삭제아버지들이 의외로 강아지의 재롱을 즐거워하시는 것같아요. 잘따르고 애교도 부리니까. chatii님의 아버님도 참 다정한 분같네요~ 저도 연락좀 자주 드리려구요. 댓글 감사드려요 =)
@mahabanya - 2009/07/14 15:52
답글삭제마하반야님의 아부지라면 그 엄청나신 분..! (아버님을 국회로 ㅋㅋ) 마하반야님과 아버님은 왠지 여러모로 닮은 듯 해요 (^^) 물론 좋은 의미로~!!
@Anonymous - 2009/07/14 21:15
답글삭제방명록으로~(^^)
@위스핏 - 2009/07/15 06:34
답글삭제아휴 아닙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녀석을 진짜 보셨으면 더 재밌으셨을텐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두요 =)
@mooo - 2009/07/15 10:32
답글삭제네 더불어 사실 내 자신이 타인에게 원하는 관심이나 이해보다 내가 실제로 행하는건 훨씬 적더라구요.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낯선모습을 보면 처음엔 어색하다가도 그런것조차 알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빠지게됩니다. 흑흑 부디 이제는 나 말고 남을 좀 사랑하고 이해할 줄 아는 소양을 기르길 스스로에게 부탁해봅니다 T T..
카센터에 가 있는 풍돌이 되가져왔으면합니다.
답글삭제이게 몹니까? 끝까지 책임을 져야죠.공장을 운영하신다면 개 한 마리 키울 공간이 없을 순 없죠? 언능.....<풍이 한 마리 키우는 애견인이>
근데...별삼님.글 참 잘 쓰시네요.작가 지망생??